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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06▶ BLACKBOX_REC.20XX0807.02:11AM_01

: 본문은 David McXXXXXX_(37, California, San Jose)가 제보한 스마트모빌리티의 블랙박스 파일을 번역한 것임.

 

―왔어?

―젠장 맞게도 덥구만. 세상에 대체 지금 시간이 몇 시지?

―세 시야 새벽 세 시. 벨트 매.

―그래. 빌어먹을 세 시고, 온도는 36도지. 자, 이게 말이 되는 날씨야? 이런 날씨에 출장? 미쳤군. 에어컨 좀 더 세게 켜줘. 걸었더니 죽을 것 같아. 커다란 고깃덩이가 온몸을 깔아뭉개는 거 같다고.

냉방을 실시합니다.

―내기 하나 할까? 우린 죄다 10년도 안 돼서 죽을 거야. 어디 내 뇌가 먼저 녹는지 남극이 먼저 녹는지 보자고. 

―슬픈 세대야.

―자동주행 켜줘. 목적지는 산호세 공항.

목적지를 설정하고 경로 검색을 시작합니다.

―오는데 글쎄 누굴 봤는지 알아? 

―누구?

―세릴.

―세릴 로즈? 

―그래, 그 미친 여자가 허정대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어. 세상에, 이게 몇 년 만인지. 처음엔 누군가 했다니까. 그나저나 마실 거 없어? 도착하기 전에 목부터 말라 죽겠는데.

―없는데.

―젠장, 가까운데 어디 들르는 게 어때. 시원한 것 좀 사자.

경로를 수정할까요?

―아냐, 괜찮아. 공항으로 가줘.

―왜?

―공항에 뭔가가 있을 거야. 비행시간이 빠듯해.

―젠장.

―하려던 얘기나 마저 해봐.

―아, 어디까지 얘기했지? 

“그래, 그 미친 여자가 허정대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어. 세상에, 이게 몇 년 만인지. 처음엔 누군가 했다니까. 그나저나 마실 거 없어? 도착하기 전에 목부터 말라 죽겠는데”

―아 맞아 세릴 로즈. 똑똑한 녀석. 요샌 기억할 필요가 없어. 가끔은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 같고. 그냥 이 조막만 한 것들 말만 잠자코 따르면 되는 거야. 그럼 세상이 적어도 요지경은 안 됐을 텐데. 잠깐, 원래 이 길이 맞나?

―이 길이 맞아. 방금 네가 말했잖아. 우린 그냥 생각할 필요 없이 따라가면 되는 거야. 

―이래서야 누가 운전자인지 원.

―가끔은 말이야 거의 살아있는 것 같아. 우리가 죽고 나면 이것들이 남아서 무슨 작당을 벌일지 궁금하기까지 하다고.

―충전소에 가서 전기나 실컷 빨아들이면서 여생을 보내시겠지. 그리고 말하는 거야. 아 그 자식들 정말 지독한 녀석들이었지….

―뭐, 그러다 직장도 다니고 수다도 떨고, 타미스에 가서 커피도 한잔하고?

―일단 내 차는 그럴 일 없어. 난 타미스 커피 싫어하거든.

―나도 싫어해. 그런데 걔도 싫어할지는 모르는 거지. 난 이 자식 말 듣다가 억지로 좋아하게 된 게 한둘이 아니야. 맥도날드, 키미스 그로서리, 일렉트릭 파우치…….

―하나같이 엄청나게 광고 때려 박는 곳들이구만. 잠깐, 방금 고양이야?

―그런 것 같네. 네가 직접 운전했으면 쳤을 거야.

―너였으면 축대에 박았을 거다. 근데 타미스 같은 게 왜 좋아졌다는 건데?

―싫어할 수가 있어야지. 온 세상이 그 자식들로 도배되어 있잖아. 볼래? 가까운 버거집에 가줘.

목적지를 맥도날드 셰인 파크점으로 설정할까요?

―아니, 나는 맥도날드 싫어하거든 멍청아.

경로를 유지합니다. 가시는 길에 시원한 음료 한잔은 어떠세요?

―봤지? 이 녀석 하자는 대로 해주다 보면 버릇 드는 거 한순간이야. 

―지랄맞구만.

―가끔은 말야. 이 자식들 귀를 아주 가려버려야 하나 싶어. 아니면 내 귀를 막던지 말야. 서로가 서로를 자꾸만 엿듣는다고. 아주 어영부영하다간 얘네랑 사고가 뒤섞여 버릴 것 같다니까. 저번엔 퇴근길에 술 생각을 좀 했더니 정신을 차려보니 리커스토어였어. 소름이 끼치더라고. 

―혼잣말이라도 했나 보지.

―아무 말도 안 했어.

―독심술이라도 쓴다 이거야?

―너가 그럼 아무 카페나 떠올려봐. 그리고 이 녀석이 어디로 우릴 데려가는지 한번 보자고. 

―됐어, 바보 같은 장난 할 시간 없어. 지금 몇 시야?

―재미없게. 출발한 지 이제 겨우 몇 분 안 됐어.

―같은 자리를 빙빙 도는 것 같은데.

―네 차도 너를 닮아서?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아직도 세릴 곁을 빙글빙글 맴도는 걸 은유한 거지.

―내가 언제 그랬다고? 난 그냥 아까 우연히 걔를 마주쳤다는 거뿐이야.

―너 그 말 할 때 눈동자 엄청나게 커진 거 알지? 내가 못 봤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세상에, 난 네가 첫사랑에라도 다시 빠진 줄 알았다.

―바보 같은 소리 그만해. 걔 생각이라면 지긋지긋해.

―네 자동차한테 묻고 싶구만. 뭐가 진실인지. 이 녀석이라면 알고 있을 텐데 말야.

원하시는 게 있으신가요?

―아니, 고맙지만 됐어. 아 그래서 아까 떠올린 카페는 어딘데?

―오 빌어먹을. 

―왜 그래?

―타미스야.

―타미스! 그럴 줄 알았지. 너도 타미스를 좋아하게 된 거라고.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우리 지금 타미스에 도착했다고.

―뭐?

시원한 음료 한잔 어떠세요?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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