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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업체에 일일이 그 IP들을 모두 따서 맡긴 거거든. 근데 IP주소들을 모으다 보니까 말이 안 되는 거야.
―몇 명이나 되는데?
―놀랄걸.
―몇 명인데?
―182명. 진짜야.
―뭐? 2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너희 쇼핑몰에 가짜 상품 후기를 작성하고 있다고? 국정원도 그렇게는 못하겠다.
―내 말이 바로 그거야.
―가짜 IP를 쓰고 있는 거 아니야? 추적을 피하려고…….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무슨 의도로? 악성 후기도 아니고 누가 사서 그런 고생을 해?
―어쩌면 경쟁 사이트에서 너희 쇼핑몰 신뢰를 해치려고 일부러 그러는지도 모르지. 일종의 악성 바이럴처럼 말이야. 복사한 빤한 후기들 웃기잖아.
―나도 처음엔 그 생각을 했거든. 그래서 보안 업체에 부탁을 했어. 혹시 경쟁 업체 사이트에 해당 IP들의 접속 기록이 있는지 봐줄 수 있냐고 말이야. 만약 그 사이트에 동일한 IP의 접속 기록이 있다면?
―걔네 짓인 거겠지.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접속 기록이 있더라고!
―그럼 된 거 아냐? 그 자식들이 범인이네.
―그런데… 웃긴 건 걔네도 피해자였다는 거지. 그쪽 홈페이지 구매 후기에도 우리랑 똑같은 글이 덕지덕지 도배된 적이 있던 거야. 지금은 거의 내려갔던데 걔네도 아마 골머리좀 썩었을걸. 다른 온라인 쇼핑몰도 죄다 마찬가지야. 다 같이 손잡고 사이버수사대라도 찾아가야 할 판이라니까.
―꼭 무슨 작전 세력이 온라인 쇼핑몰들에 훼방이라도 놓고 있는 거 같네.
―아니면 도움이거나.
―도움?
―어쨌든 매상은 뛰었거든. 접속 로그가 많이 찍히거나 오가는 데이터가 활발할수록 사용자에게 노출 빈도는 어떤 식으로든 높아져. 인터넷이란 게 그래. 가볍고 평평한 정보들만이 구름 위로 둥둥 떠다니지. 정보의 깊이는 중요하지 않아.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 그 IP들 위치는 어디로 뜨는데? 걔네가 발붙이고 있는 주소 말이야.
―청계천.
―청계천?
―그리고 명동, 남산, 종로, 을지로. 강남.
―그게다 뭐야?
―모두 공공 와이파이 스팟들이야. 모두 공공와이파이 IP를 이용하고 있어.
―어째 일이 점점 머리 아파지는 것 같다. 누구길래.
―누군가가 아닐 수도 있지.
―그게 무슨 말이야.
―어쩐지… 보면 볼수록 사람의 글 같지가 않은 거야. 챗 지피티 써봤지? 꼭 무엇인가가 사람의 글씨를 모방하고 있는 그런 느낌…. 글쎄, 악성프로그램? 혹은 어떤 이상한 프로토타입 시스템이나 알고리즘의 서툰 시범 작동을 보고 있는 느낌이야… 글의 내용 자체는 서투른데 보안 업체의 추적을 뿌리치는 방식이나 공공와이파이 IP를 이용하는 방식 같은 건 비인간적일 정도로 치밀해. 어떻게 생각해?
―다른 건 모르겠고 너가 요새 이 일로 골머리좀 썼다는 건 알겠다.
―왜?
―말 그대로야. 바이러스니 뭐니… 그냥 편하게 생각해. 뭐 어떠냐는 거지. 그런 글 좀 쓴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 있어. 오히려 잘 됐다며. 온라인 소비의 활성화. 좋은 거 아냐? 난 누가 나 대신 내 상품 홍보해주고 팔아주고 발주도 넣어주고 하면 좋겠다야. 아,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나한테 좋은 아이템이 있거든.
―너 저번에 공장에 발주 넣은 것도 그대로 창고에 쌓여있는 건 알지?
―안 그래도 업체에 다 처분해버릴 생각이야. 너도 사업해봐. 마구 찍어내서 마구 팔아 재껴야 살아남는 거야. 물량 공세는 못 당해.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야. 진짜 확실해. 자, 들어보라고….